[담임목사] 요한계시록강해-7 / 그분 앞에 서기위해

▷ 본문 :요한계시록 6장 1절 ~ 17절
▷ 설교자 :전근일 담임목사
▷ 설교일 :2013년 1월 27일 주일

저는 2003년에 경찰에게 체포되어 연행이 되어서 취조를 당한적이 있습니다.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갱신해야 하는데 미국에서 사역을 했기 때문에 그 기간을 넘겼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새벽에 동료목사님 장인 장례에 조문을 다녀오는데 새벽 3시경에 동작대교를 건너는데 경찰의 검문이 있었고 운전면허가 취소된 상태에서 운전을 했기 때문에 무면허운전으로 현장에서 체포되어 취조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경찰 앞에서 취조를 당하는데 너무 떨리고 긴장이 되고 그리고 앞이 캄캄했습니다. 물론 몇 달 후에 경찰측의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며 사과의 편지가 와서 사건은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몇 일전 학교의 눈물이라는 다큐를 보았습니다. 거기에 보면 소위 일진이라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법정에서 법관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비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법관은 그런 아이들에게 엄히 꾸짖고 어떤 아이들에게는 실형을 선고하는 모습도 보여졌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도 무서워하지 않고 길거리에 다니는 어른도 무서워하지 않던 아이들이 법정에서 법관 앞에 섰을 때 울며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보면서 17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는 말씀처럼 그 중압감을 과연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지난주의 말씀은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담긴 책, 곧 두루마리의 인을 떼실 것에 대해서 말씀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인들이 떼어지는 현장이 기록된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힘입어 그분 앞에 담대히 설 수 있기 위해 우리의 삶을 결단하는 시간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의 핵심은 인을 뗄 때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그 사건에만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1, 3, 5, 7절 말씀을 보면 네 생물이 차례로 나오는데 이 생물에 대한 해석이 있지만 성경은 그 생물에 대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면서 오로지 인을 뗄 때 나타나는 사건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절에 보면 첫 번째 인을 떼셨는데 그곳에는 흰말이 있고 그 탄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아가 이기었다는 말씀이 기록됩니다. 첫 번째 인을 떼신 사건에서 핵심이 되는 단어는 흰말과 그 탄자, , 면류관입니다. 그런데 흰말에 대해서 정확히 해석하지 않으면 말씀이 완전히 극과 극을 달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보수정통 교단의 대표적인 목사님들도 이 말씀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은 흰말과 그 탄자를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해석을 합니다. 또 어떤 분은 흰말과 그 탄자를 적그리스도로 해석을 합니다. 물론 다른 해석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해석은 요한계시록의 전체적인 문맥에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담긴 두루마리의 인을 떼서 펼친 내용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 얼마나 극과 극을 달리는 해석입니까? 흰말과 그 탄자를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할까요?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아니면 적그리스도로... 참으로 난감한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저는 적그리스도라는 해석에 비중을 두겠습니다. 왜냐하면 첫째,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담긴 두루마리를 이제 막 열었습니다. 그리고 두루마리의 인을 떼시는 일로 인해 재앙, 곧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승리하신 예수님이 모든 세력을 다 이기신다면, 그리고 그 후에 둘째 인을 떼고 셋째 인을 뗄 때에 재앙, 곧 심판이 되어진다면 예수님의 승리는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둘째,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말씀을 통해서 볼 때 예수님의 승리는 완전한 승리입니다. 그런데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는 말에는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담겨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는 모든 싸움에서 넉넉히 이기도록 만드는 이름이십니다. 왜냐하면 6:33의 말씀처럼 예수님이 넉넉히 세상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흰말과 그 탄자는 적그리스도로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의 머리에는 면류관이 씌여져 있고 또한 활이 들려서 사람들을 두렵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통해서 많은 추종자들을 만들고 그리고 미혹하는 일을 통해서 많은 추종자들을 만드는 적그리스도의 역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가 될수록 우리의 믿음을 더욱더 굳게 하여 좌로나 우로나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미혹으로 흔들려서도 안되고 또한 두렵다는 이유로 흔들려서도 안됩니다. 왜냐하면 미혹을 통한 배교의 결과는 불심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기 위해서는 늘 말씀에 굳게 서는 신앙을 유지해야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분별의 은사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4절에 보면 둘째 인을 떼고 난 다음에 나타나는 사건에 대해 기록합니다. 둘째 인을 떼자 붉은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탄자는 땅의 화평을 제하여 버렸고 서로 죽이게 하고 큰 칼을 받았다고 기록합니다. 이 말씀은 해석하기에 그리 어려운 말씀이 아닙니다. 붉은 말과 그 탄자는 전쟁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화평을 제하고 서루 죽이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큰 칼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살상용 무기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였습니다. 구약에서 전쟁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전쟁을 하나님께서 조장하시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쟁은 하나님께서 조장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화평이 제하여졌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화평이 제하여진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하와가 선악과 열매를 따먹을 때 사단이 유혹한 방법에는 욕심이라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먹고 싶다. 갖고 싶다. 그리고 하나님처럼 되고 싶다. 이런 욕심이 잉태되어 죄를 낳았고 죄가 장성해서 사망을 낳은 것입니다.

5절에 보면 셋째 인이 떼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셋째 인이 떼어지자 검은 말이 나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탄자의 손에는 저울이 들려 있습니다. 그리고는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한 데나리온은 보통 사람들의 하루 품삯입니다. 그리고 한 되는 대략 800g 정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루의 품삯으로 밀 한 되를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됩니다. 4절에 나온 붉은말 곧 전쟁을 통해 얻어진 결과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식량이 부족하여 수입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나라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굳이 전쟁이 아니라도 식량부족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생태학자들의 발견에 따르면 최적의 온도에서 약 1도가 상승할 대마다 농작물 수확은 10% 가까이 줄어든다고 합니다. 또한 기온 상승으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올라가게 됩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약 백 년 동안 6피트정도 해수면이 상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단 3피트만 해수면이 상승을 해도 전 세계 쌀 생산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아시아의 쌀 수확이 급격히 감소한다는 것입니다.

2008년에는 식량 가격이 폭등할 때, 28개 나라에서 식량 폭동이 일어났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전 세계에서 약 20억 명의 사람들이 영양결핍을 겪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들을 먹일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식량안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며 이것은 확실한 재앙입니다.

8절에 보면 넷째 인이 떼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넷째 인이 떼어지자 청황색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탄자를 일컬어 사망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사망이라는 자가 땅의 사분의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들로써 죽인다고 기록합니다. 많은 분들은 청황색 말을 질병이라고 해석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은 많은 질병들이 사람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이유는 기아로 인한 사망이 아닌 에이즈로 인한 사망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2010년까지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은 약 2800만 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 중 짐바브웨와 보츠와나는 25%에 달하는 충격적인 감염률을 보이고 있고, 케냐가 속한 중앙아프리카는 10%정도의 감염률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10%, 10명 중에 한명. 치료법이 없는 점을 감안할 때, 엄청난 수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질병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암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더 증가하고 심지어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도 갈수록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9-10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그들이 가진 증거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에 있어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갚아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 하나이까라고 탄원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믿음으로 살다가 순교한 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증거를 전하다가 순교를 당한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하는 것은 자신들을 죽인 사람들에 대한 개인적인 복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통치하셔서 악을 응징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을 통해서 자신들의 믿음을 입증하기 위한 요청인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일을 통해서 생존해 있는 성도들에게 죽음을 불사하는 믿음이 귀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청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반응을 보이십니까? 11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11각각 그들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쉬되 그들의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당하여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하나님께서는 언제라고 묻는 순교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제라고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흰두루마기를 주시고 일정한 숫자의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쉬고 있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벧후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이 이 말씀을 해석하는 열쇠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성경 전체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며 아울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가 회개하여 온전한 믿음으로 살기를 기다리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그들이 쉬고 있어야 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도록 하기 위한 하나님의 참으심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사람들의 심판의 근거를 차곡차곡 쌓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은 사단과 사단에 속한 자를 향한 것입니다.

12절 말씀에 보면 여섯째 인에 떼어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섯째 인이 떼어지자 큰 지진이 나며 해가 검은 털로 짠 상복 같이 검어지고 달은 온통 피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별들이 무화과나무가 대풍에 흔들려 설익은 열매가 떨어지는 것 같이 땅에 떨어지고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진다고 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우리는 이미 현실에서 그리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서 접하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일본에서 일어나 두 차례의 쓰나미를 통해서 엄청난 파괴력을 실감했고, 쓰촨성과 아이티에서 일어났던 지진으로 인해서 전 세계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또한 2000년이 되기 전 1998년도에는 두 편의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바로 영화 아마겟돈과 딥 임팩트란 영화입니다. 이 두 영화 모두 우주에서 날아오는 소행성으로 인해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하늘의 별들이 마치 무화가 나무가 바람에 떨어지는 것처럼 쏟아져 내릴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주적인 종말의 진행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태양이 제 기능을 잃어 검게 되면 세상은 종말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말의 재앙은 아무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를 통하여, 전쟁을 통하여, 기근을 통하여, 그리고 질병을 통하여 재앙을 내렸지만 그 가운데 혹시 생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6번째 인이 떼어지고 벌어지는 이 우주적인 재앙에는 그 누구도 살아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15-16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17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라고 말씀합니다. 누가 과연 서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실제적인 답변이 요한계시록 7장에 나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의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과연 누가 능히 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고 참으시는 이 시간동안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히브리서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라는 말씀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죄를 씻은 사람만 그 앞에 설 수 있는 담력을 얻게 됩니다. ,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는 것입니다. 그 보혈이 나의 모든 죄를 사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그 은혜가 우리에게 넘쳐나도록 회개해야 합니다. 끝으로 이러한 은혜를 더욱더 곤고히 하기 위해서 히브리서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는 말씀처럼 교회의 이름으로 모이기에 힘쓰고 더욱더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지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그 앞에 설 담력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지나가는… 2013.01.31 21:02:54 댓글달기 삭제
말씀에 귀한 은혜받고 갑니다... 늘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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